1. 주민참여예산제도란 무엇인가?
주민참여예산제도는 지방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삶과 관련된 사업을 제안하고, 그 우선순위를 결정함으로써 예산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단순히 의견을 내는 수준을 넘어서, 주민이 예산 편성과정의 주체가 되어 마을 문제 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제도는 1989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시에서 최초로 도입되어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시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광주 북구에서 처음 시범 운영된 이후,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이제는 전국 모든 지자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주민이 느끼는 지역 문제와 행정기관의 정책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행정에서는 도로 포장이나 상하수도 개선을 중점사업으로 삼을 수 있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아동 돌봄 공간 부족이나 노후된 경로당 수리 같은 생활밀착형 복지를 더 시급하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주민참여예산은 행정과 주민 간의 소통 창구이자,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중요한 통로로 기능한다.
2. 주민참여예산의 추진 과정
주민참여예산제도의 구체적인 추진 절차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주민 제안 → 지역회의 논의 → 행정 검토 →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심의 → 예산안 편성 및 확정’의 순서로 진행된다. 먼저 지자체는 홈페이지, 전단지, 문자, 주민자치센터 등을 통해 예산 제안 공모를 실시한다. 이때 개인 주민뿐 아니라 단체, 마을회, 통장단, 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주체가 제안할 수 있다.
제안된 사업은 읍·면·동 단위의 지역회의나 분과 회의에서 논의되며, 이 과정에서 사업의 필요성, 실행 가능성, 예상 비용 등을 따져보게 된다. 이어서 지자체 관련 부서에서 실무적으로 타당성을 검토하고,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우선순위를 조정한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대표하는 주민으로 구성되며, 그 안에는 청년, 여성, 장애인, 다문화 등 소외계층 대표가 포함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선정된 사업은 다음 연도의 예산안에 편성되어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중요한 점은 이 전 과정이 공개적으로 운영되며, 회의록, 평가 결과, 사업 선정 이유 등이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유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의 신뢰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반복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3.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장점과 기대 효과
주민참여예산제도는 단순한 예산 집행의 민주화를 넘어, 지역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이끄는 힘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산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행정에 대한 신뢰를 높인다.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주민이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부정·비효율적인 예산 운용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주민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문제에 집중함으로써 실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업이 실현된다. 예컨대, 한 지역에서는 주민참여를 통해 방범 CCTV 설치가 이루어졌고, 또 다른 지역에서는 야외 운동기구와 쉼터가 설치되어 노인들의 여가 환경이 개선된 사례가 있다.
셋째, 주민 스스로 지역을 고민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의식이 살아난다. 다양한 주민이 함께 모여 예산을 논의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며, 협력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 주민 스스로가 ‘주인’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민주적 훈련이기도 하다. 더불어, 청소년이나 청년층이 이 과정에 참여하면 정치적 감수성과 시민의식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적 효과도 크다.
4. 사회복지와 주민참여예산의 연결점
주민참여예산제도는 특히 사회복지 영역과의 연계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마을 내 돌봄 공백, 취약계층의 주거환경 개선, 정신건강 지원, 장애인 접근성 향상 등 다양한 복지 수요는 행정이 일방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복지통장, 복지이·반장 등 마을 단위의 복지 실천가들과 주민들이 직접 문제를 발굴하고 예산을 제안함으로써 실효성 높은 복지사업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서는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마을안심벨 설치 사업’이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실현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문화활동 지원 사업이 주민 제안으로 추진되었다. 이처럼 주민참여예산은 지역사회보장계획과도 긴밀히 연계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지역 맞춤형 복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주민자치회, 주민참여예산 지역회의가 상호 협력하고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면, 중복사업을 방지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통합적 마을 복지 체계가 가능해진다.
5. 제도의 한계와 개선 과제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지닌 한계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주민 참여의 지속성과 다양성 부족이다. 제안 과정이 익숙하지 않거나 정보 접근이 어려운 고령층, 장애인, 외국인 주민은 배제되기 쉽다. 또한 ‘관심 있는 소수’만이 반복 참여함으로써 주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게다가 제안이 반영되지 않거나, 예산 과정이 형식적으로 운영되면 주민의 실망과 불신이 커지고 참여가 위축될 수 있다.
행정 입장에서는 제안이 많아지면 예산 배분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사업 관리의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실제로는 반영 가능성이 높은 제안만을 선별하거나, 행정 중심의 기획으로 다시 회귀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제안 단계에서의 컨설팅 지원, 참여기회의 확대, 예산 집행 이후의 모니터링 강화 등이 필요하다. 특히 제안이 채택되지 않은 주민들에게 피드백을 제공하고, 그 제안이 왜 보류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과정은 신뢰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더 나은 참여를 위한 방향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지속 가능하고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도 운영의 민주성’과 ‘주민 역량 강화’라는 두 가지 축이 균형 있게 작동해야 한다. 먼저 제도 자체의 개방성과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회의 참여 대상의 다양화를 추진하고, 사전 정보 제공과 숙의 과정을 체계화해야 한다. 예산 편성과정이 단순한 찬반투표가 아니라 깊이 있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실질적인 주민 참여가 가능해진다.
동시에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한 행정 용어나 예산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주민 대상 예산학교, 주민리더 교육 등을 운영함으로써, 주민이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제안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 참여예산제, 청년 주도형 참여예산 등 세대별 참여 채널을 다양화함으로써, 미래세대의 시민성을 기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민참여예산이 단순한 사업제안 방식에서 나아가,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마을복지계획, 자원연계, 민관협력 네트워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주민이 제안하고, 함께 계획하고, 실행과 성과를 공유하는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초석이 마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