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적 국가란 무엇인가
‘포용적 국가(inclusive state)’란 단순히 소외계층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구조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이는 자유롭고 공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며,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 중산층, 미래 세대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 방향을 지향한다. 포용적 국가는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지 않으며,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모델이다. 다시 말해, ‘함께 사는 사회’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실현해 나가는 방식이다.
왜 지금, 포용적 국가인가?
글로벌 경제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등의 전 세계적 현상은 기존의 시장 중심 성장 모델이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를 심화시켰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와 계층 간 이동성의 단절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왔다. 한국의 경우에도 높은 비정규직 비율, 청년층의 취업난, 고령층의 빈곤 문제, 보육과 돌봄의 부담 등은 단지 복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의 불균형을 반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포용적 국가는 사회 통합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국가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단기적 위기 대응을 넘어 중장기적 체질 개선을 목표로 한다.
포용은 복지를 넘어선다: 정책의 다차원화
포용적 국가는 단지 복지 확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교육에서부터 노동, 보건, 주거, 문화, 환경, 정치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의 연계를 전제한다. 예컨대 교육의 경우 단순한 무상 교육이 아니라,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역 맞춤형 교육 지원, 다문화 가정 자녀의 언어 적응 지원, 특수교육 대상 아동에 대한 통합 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노동 분야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고용안전망 확충, 직업 재교육, 사회적 기업 지원 같은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 주거에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임대주택 제공뿐 아니라, 청년층 주거 안정, 지역 간 주거 격차 해소를 위한 도시 재생 전략이 포함된다. 이렇게 복지에서 시작해 정책 전반에 포용의 원칙을 내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민 참여와 지역사회 기반의 중요성
포용적 국가는 위로부터의 보호를 넘어,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실천을 중시한다.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시민과 지역사회가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주민참여예산제는 예산 결정 과정에 시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함으로써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고 지역 문제에 대한 공동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데 기여한다. 또한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같은 민관 협력 기구는 복지 전달의 말단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자원을 연계하는 핵심 매개체로 기능한다. 이러한 참여 기반은 지역 간 복지 불균형을 해소하고, 실질적인 포용성을 확산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된다.
포용적 성장: 경제와 복지의 공존
경제 성장과 복지는 더 이상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다. 포용적 국가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개념을 통해, 모든 국민이 성장의 혜택을 고르게 누릴 수 있도록 조정 장치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은 2020 전략을 통해 ‘스마트, 지속 가능, 포용적 성장’을 3대 목표로 설정하고, 각 회원국이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사람 중심의 성장’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 확대,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 등 포용적 성장의 제도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 돌봄, 장애인 서비스 등 사회서비스 분야의 공공성 강화는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한다.
국제적 흐름과 비교 사례
핀란드의 경우,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에 가까운 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실험을 실시하며 포용적 국가의 모델을 선도하고 있다. 스웨덴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전 생애 복지 모델을 통해 국민의 생애 주기 전반을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와 원주민 권리 보호, 이민자 사회 통합 정책을 통해 포용성을 강화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웰빙 예산(Wellbeing Budget)’을 통해 경제 지표가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중심으로 정책을 재구성했다. 이러한 흐름은 복지국가의 진화 형태이자, 사회 통합을 위한 국가적 전략으로서의 포용 모델이 국제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의 포용적 국가 실현 과제
우리나라는 빠른 경제성장과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의 취약성과 불평등의 구조적 고착화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특히 서울과 비수도권, 도심과 농산어촌 간의 지역 격차, 노동시장 내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는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다. 포용적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보편성과 선별성을 조화롭게 배치한 복지제도의 재구성, 둘째, 지방정부와 지역공동체의 역량 강화, 셋째,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확대, 넷째,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구축이 필수적이다. 또한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 시민사회, 종교, 학계 등 다양한 사회 주체들과의 협력이 요청된다.
결론: 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
포용적 국가는 단지 이상적 가치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대에 국가가 생존하고 국민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다.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면서도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 그것이 포용의 진정한 의미이다. 이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시민 개개인의 인식 전환과 참여, 지역사회의 연대, 사회 각 분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포용적 국가는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공동체적 응답이자,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