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건강보험의 위상과 역할
대한민국의 국민건강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NHI)은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보험료를 납부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단일보험(single-payer) 방식의 보편적 의료보장제도다. 1977년 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을 처음 도입한 뒤 198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통합되었고,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NHIS)을 단일보험자로 통합하며 지금의 체계를 갖췄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 시스템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완성한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 국민 의료보장 달성국”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는 한국이 의료보장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와 그 특징
한국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구분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수월액(근로소득)에 보험료율(2025년 현재 약 7.09%)을 곱해 산정하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씩 부담한다. 예를 들어 월급이 400만원이라면 근로자와 사업주가 각각 약 14만원 정도를 부담한다. 최근에는 보수 외 소득(임대소득, 이자소득, 배당소득 등)을 반영해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제도가 개선되었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뿐 아니라 재산(주택, 자동차 등)을 반영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과거에는 ‘재산 중심’ 부과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2018년 7월부터 1단계 개편을 통해 소득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소득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OECD 국가 중 독일, 프랑스 등 소득비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갖춘 국가와 유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보험료율 수준과 국제비교
한국의 건강보험료율(약 7%대)은 독일(14%대), 프랑스(약 13%대) 등 다른 선진국의 사회보험료율에 비해 낮은 편이다. 특히 독일은 건강보험 외에 장기요양보험, 실업보험 등을 포함한 사회보험 통합징수 방식으로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 역시 장기요양보험료를 별도로 부과하고 있으며, 이는 건강보험료의 약 12% 수준으로 부과된다(예: 건강보험료가 20만원이면 장기요양보험료는 약 2만4천원).
영국의 경우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조세로 운영되기 때문에 별도의 건강보험료는 없지만, 이 경우 국가 재정 부담이 막대하며, 한국처럼 보험료 기반으로 재정을 일부 충당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일본도 건강보험을 운영하지만, 보험료율이 지역과 직장가입자별로 달라 복잡하고,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러한 국제 비교를 통해 볼 때 한국은 비교적 낮은 보험료율로도 높은 의료접근성을 보장하는 편에 속한다.
보험료의 형평성과 사회적 논의
한국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사회적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산정방식의 차이,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루 문제, 은퇴 이후 국민연금 수급자나 소득이 적은 노년층의 부담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었다. 예를 들어, 은퇴 후 지역가입자가 되면 국민연금 수급액과 주택·자동차 등 재산에 따라 보험료가 산정되어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소득중심 보험료 부과체계’로 점진적 개편을 추진하며 형평성을 개선하고 있다.
또한 보험료 납부와 관련해 저소득층 지원을 위한 ‘보험료 경감제도’도 운영 중이다. 일정 소득 이하 가구에 대해 보험료 일부를 경감하거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제도를 통해 본인부담금을 경감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적 보완 장치는 OECD 국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한국은 특히 재정 상황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인상과 재정 안정성
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 보험료와 국고 지원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법적으로 보험료 수입의 14% 이상을 국고에서 지원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매년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고 지원이 변동해왔다. 최근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첨단의료기술의 발달 등으로 의료비가 급증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보험료 인상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5년 기준 보험료율은 약 7.09% 수준으로 비교적 낮지만, 고령화와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보험료율의 점진적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독일과 일본도 고령화로 인해 보험료율을 계속해서 인상해왔고, 한국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국고 지원 확대, 의료비 효율화, 본인부담금 조정 등 다각적인 대책이 동시에 필요하다.
맺음말: 건강보험료와 건강보험의 미래
대한민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보험료율로도 높은 의료접근성과 의료보장성을 실현해온 세계적 모델이다. 그러나 고령화, 만성질환, 첨단의료 확대 등 세계적 보건의료 환경 변화 속에서 재정 건전성과 형평성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야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소득중심 개편과 국고 지원 확대, 보험급여의 효율적 관리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이제 단순한 의료보장제도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조화롭게 결합한 글로벌 롤모델로서 자리매김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