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복지국가 덴마크의 상징, 기초연금의 철학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복지국가 중 하나로 꼽히며, 국민 개개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안정적 삶을 보장하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이 철학은 덴마크의 기초연금 제도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초연금은 단순히 고령층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제도가 아니다. 덴마크에서는 이를 "노후의 인간 존엄성 보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이는 국가의 복지철학과도 깊이 연결된다.
특히, 덴마크에서는 기초연금을 ‘권리’로 인식한다. 즉, 평생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공동체가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소득 보장 장치로서 연금을 바라본다. 이러한 인식은 제도 설계뿐 아니라 국민의 수용성과 제도에 대한 신뢰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이 같은 기반은 오늘날 덴마크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유럽 최저 수준으로 유지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2. 기초연금의 구성: 보편성과 선별주의의 절묘한 결합
덴마크의 기초연금 제도는 크게 두 가지 틀로 나뉜다. 하나는 **기본연금(Grundbeløb)**으로, 만 67세 이상이며 일정한 거주 요건을 충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보편적 급여다. 다른 하나는 **보충급여(Pensionstillæg)**로, 개인의 소득과 자산 수준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선별적 급여이다.
이 구조는 이중적인 특징을 갖는다. 먼저, 모든 노인이 일정 수준의 급여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음으로써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실현한다. 동시에, 추가 소득이 적거나 없는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형평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보편성과 선별주의의 결합은 재정 효율성과 사회 정의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덴마크의 복지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또한, 덴마크에서는 연금 수급자의 배우자 소득까지도 연금 결정에 반영된다. 즉, 고소득 배우자가 있는 경우, 수급자의 연금이 감액될 수 있다. 이는 가구 단위의 형평성과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이다.
3. 수급 요건과 지급 체계의 세부 내용
기초연금 수급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만 67세 이상의 연령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덴마크 내 40년 이상 거주 경력이 있어야 전액 수령이 가능하다. 이보다 짧게 거주한 경우에는 거주 기간에 비례해 연금이 감액되어 지급된다. 예컨대 20년만 거주한 경우, 전체 연금액의 50%만 받을 수 있다.
이주민의 경우도, 일정 기간 거주를 하면 일부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외국 출신 고령자도 사회안전망 안에서 일정 수준의 소득보장을 받을 수 있으며, 이는 유럽 내에서도 드문 포용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연금은 매월 말일에 지급되며, 지급액은 매년 물가 상승률, 평균임금, 사회경제적 조건 등을 반영해 조정된다. 2025년 기준, 단독 수급자의 경우 연간 약 106,000 덴마크 크로네(DKK), 한화 약 2,000만 원 정도가 지급되며, 여기에 보충급여와 주거보조금이 더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임대 주택에 사는 저소득 노인은 연금 외에도 주거 보조금(Huslejetilskud)을 받아 실제 가처분 소득을 크게 늘릴 수 있다.
4. 보완적 연금 제도: ATP와 직장 연금의 조화
덴마크의 기초연금은 '최소한의 삶 보장'에 초점을 둔 제도이지만, 더 나은 노후를 위한 장치로는 **ATP(Arbejdsmarkedets Tillægspension)**와 직장 연금(Occupational Pension) 제도가 있다. ATP는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준공적 연금으로, 모든 근로자가 자동으로 가입되며, 고용주와 근로자가 소액의 기여금을 납부해 퇴직 후 일정 연금을 받는다.
한편, 직장연금은 노사 협상에 따라 마련되는 민간 성격의 연금으로, 특정 업종이나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추가적인 노후 소득을 보장한다. 이처럼 덴마크는 ‘3층 연금체계’를 통해 국민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는 국가가, 추가적인 삶의 질은 개인과 시장이 함께 보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5. 고령화 사회와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덴마크는 유럽 전체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개혁이 병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의 상향 조정이다. 과거에는 65세였던 연령이 67세로 조정되었고, 앞으로는 평균 기대수명에 따라 자동적으로 연령이 올라가는 **‘연동제’**가 도입되었다.
또한, 덴마크 정부는 디지털 행정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연금 신청부터 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통합 관리한다. 이를 통해 행정비용을 절감하고, 부정수급이나 누락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다. 효율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덴마크의 접근은 다른 복지국가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6. 제도 정착의 기반: 높은 시민 신뢰와 조세 수용성
덴마크 기초연금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데는 높은 시민의 신뢰와 조세 순응도가 뒷받침된다. 덴마크 국민은 세계에서 가장 세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에 살고 있지만, 세금이 투명하게 쓰이며 자신과 공동체에 돌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러한 신뢰는 복지 제도 운영의 기반이자 사회적 자산이다.
연금제도는 정당 간 정치적 합의가 잘 이루어지는 대표적 분야이기도 하다. 좌우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연금의 기본 방향이나 보장성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며,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 속에서 초당적 합의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안정성은 연금 수급자에게 예측 가능성과 신뢰를 제공하며, 복지국가 모델을 더욱 공고히 만든다.
7. 한국에 주는 시사점
우리나라의 기초연금 제도는 2014년 도입 이후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보편성과 형평성의 균형, 적정 급여 수준, 재정 지속가능성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덴마크의 사례는 단순히 급여 수준이 높다는 것 이상으로, 복지제도에 대한 철학, 국민적 합의, 정책의 일관성, 행정 효율성 등이 어떻게 제도 지속성과 신뢰를 뒷받침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연금제도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보편성과 선택적 급여를 조화롭게 결합할 수 있는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동시에 연금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과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 역시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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